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잉카 제국 (문단 편집) == 국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kkCxv2ShiOcmtv88StA_inca_empire.png|height=3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usco4.jpg|height=300]]}}} || || '''{{{#800000 잉카 제국의 최대 강역}}}''' || '''{{{#800000 쿠스코 인근의 요새 유적 삭사이와만[* 오차 하나없이 짜맞추어진 거대 암석 석벽으로 유명하다.]}}}'''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잉카 제국은 '''[[콜럼버스]] 도래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다. 현재의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등 6개국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는 대제국이었으며, [[남아메리카|남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 대부분을 지배했다. 당시 잉카 제국 동쪽으로는 빽빽한 산림이 우거진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인 [[아마조니아|아마존 우림]]이 버티고 있고, 남쪽 지방은 추운 아한대 기후로 사람이 많이 거주하기 어려웠으며, 북쪽으로는 거의 콜롬비아까지 진출한 것을 감안해보면 당시 남미 대륙에서 인간이 대규모로 거주하고 있는 지방 대부분을 통치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잉카 제국의 기술력도 최근들어 재조명받고 있는 주제들 중 하나이다. 유럽인들 이전의 아메리카에는 [[바퀴(도구)|바퀴]]나 [[수레]] 같은 문명의 기초적인 발명품들이 등장하지 않았고, 심지어 [[철기 시대]]의 핵심인 [[철(원소)|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에 [[구리]]나 [[청동]] 같은 기본적인 금속들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잉카 제국은 [[로마 제국]]에 비견될만큼 길고 탄탄한 도로들을 수도 쿠스코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깔았으며, 끌과 망치같은 단순한 연장만으로 안데스의 험준한 산맥들에 길을 내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도 했다. 게다가 길을 낼 수 없는 절벽 등에는 줄로 다리를 꼬아 길을 잇는 등 여러모로 [[유라시아]]권의 문화와는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기술을 발전시켰다. 잉카 제국이 광대한 영토를 경영할 수 있었던 요인들 중 하나는 걸어다니는 파발꾼 '[[차스키]](Chasqui)'의 존재였다. 가장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려 뽑았는데, 차스키들을 통하면 하루 '''240km'''에 달하는 속도로 메시지를 전달시킬 수 있었다.[* 이는 한 사람이 240km를 이동하는게 아니라 한 사람이 지치기 전에 바로 다음 차스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서 릴레이로 뛰게 하는 방식이었기에 가능했다.] 차스키들은 그냥 일반적인 파발꾼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차스키는 고도로 교육받고 훈련받은 일종의 엘리트였다. 메시지를 전달해야하니 매듭 언어 '키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했고, 수많은 부족들 사이를 왔다갔다해야하니 자유자재로 통역이 가능해야만 했다. 키푸의 일부 용어는 오직 차스키들끼리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스키가 동석하지 않으면 해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차스키들은 '푸투투'라 불리는 [[소라]] 껍질로 만든 나팔을 들고 다녔다. 차스키가 돌아다니던 도로에는 '탐보'라 불리는 휴식용 초소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는데, 차스키가 다음 탐보에 도착하기 직전에 메시지를 넘겨받을 다음 차스키에게 미리 준비하라는 신호로 푸투투를 불어 신호를 줬던 것이다. 메시지를 다음 차스키에게 전달하고 나면 탐보에서 쉬면서 다른 메시지를 기다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